Dave Eggers가 처음 Talking Heads의 음악을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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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Eggers by David Shankbone” by David ShankboneDavid Shankbon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것이 내가 열두 살 때 밴드를 처음 알게 된 방식이다. 그러나 난 그 레코드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미친 것으로 여겼다. 난 매우 보호받는 환경에서 자랐다. 음악적으로는 Crystal Gayle과 John Denver와 Billy Joel을 듣던 곳이었다. 그리고 난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를 들었고 Byrne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를 알아내는데 몇 달이 걸렸다. 그가 가사로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만한 선례가 없었다. – Dave Eggers

Talking Heads : 77 CD + DVD 의 속지에 쓰여 있는 글의 일부를 발췌함. Dave Eggers는 작가.

Talking Heads: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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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77” by Sire Records – Original album.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7년 9월 16일 Talking Heads의 데뷔 앨범 “Talking Heads: 77”이 발매되었다. Talking Heads와 Tony Bongiovi, Lance Quinn이 함께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76년 말에서 1977년 중반까지 뉴욕에 있는 Sundragon 스튜디오에서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이 앨범에는 밴드가 전설적인 펑크락 클럽 CBGB에서 부르곤 했던 여러 곡을 포함하고 있다. 팝 차트 92위까지 오른 “Psycho Killer”는 그룹을 상징하는 대표곡이 되었다. 이 앨범은 2005년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양면 CD로 재발매되었다. 이 CD의 첫째 면에는 다섯 개의 보너스 트랙과 함께 오리지널 곡들이 실려 있다. 다른 면에는 오리지널 스트레오 믹스와 5.1 서라운드 믹스(E.T. Thorngren과 Jerry Harrison이 작업)가 가미된 앨범의 DVD 오디오 버전이 실려 있다. 또한 “Pulled Up”(1978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스프라울(Sproul) 플라자에서의 공연)과 “I Feel It In My Heart”(1976년 뉴욕의 더 키친에서의 공연)의 라이브 버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발매될 당시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 97위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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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ster Version Track Listing

CD
1. Uh Oh Love Comes To Town
2. New Feeling
3. Tentative Decisions
4. Happy Day
5. Who Is It
6. No Compassion
7. Book I Read
8.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9. First Week/Last Week… Carefree
10. Psycho Killer
11. Pulled Up
12. Love (Building On Fire) (bonus track)
13. I Wish You Wouldn’t Say That (bonus track)
14. Psycho Killer (acoustic/bonus track)
15. I Feel It In My Heart (previously unreleased/bonus track)
16. Sugar On My Tongue (bonus track)

DVD
1. Uh Oh Love Comes To Town (5.1 mix/DVD)
2. New Feeling (5.1 mix/DVD)
3. Tentative Decisions (5.1 mix/DVD)
4. Happy Day (5.1 mix/DVD)
5. Who Is It (5.1 mix/DVD)
6. No Compassion (5.1 mix/DVD)
7. Book I Read (5.1 mix/DVD)
8.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5.1 mix/DVD)
9. First Week/Last Week… Carefree (5.1 mix/DVD)
10. Psycho Killer (5.1 mix/DVD)
11. Pulled Up (5.1 mix/DVD)
12. Psycho Killer (acoustic/5.1 mix/bonus track/DVD)
13. Uh Oh Love Comes To Town (alt. 5.1 mix/bonus track/DVD)
14. Pulled Up (live at Sproul Plaza, Berkeley CA 1978/video/DVD)
15. I Feel It In My Heart (live at the Kitchen, New York 1976/video/DVD)

Simply Red가 부른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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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Hucknall singing” by Simplyred Ltd – Simplyred.com.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Holding Back The Years”, “If You Don’s Know Me By Now” 등으로 유명한 Simply Red가 Heaven을 라이브 공연에서 다시 부르고 있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악기 편성에 템포를 더 느리게 했다. 싱어 Mick “Red” Hucknall 의 특유의 보컬이 이 노래에서도 돋보인다. 무대를 보아하니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공연장인 것 같다.

공연 비디오 보기

Jonny Marr가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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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Marr” by shokophotohttp://www.flickr.com/photos/88083713@N00/362537761/in/set-72157594494613243/.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나는 언제나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을 좋아했어요. 나는 Talking Heads의 두 번째 앨범을 많이 좋아하고요. Wire의 두 번째 앨범도 좋아했고요. 그리고 Buzzcoks의 두 번째 앨범도 좋아했습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새 밴드의 후속앨범들을 얻기 전까지 참을 수가 없어요.” Jonny Marr

출처

‘Stop Making Sense’에 관한 Chris Frantz의 인터뷰

Rolling Stone이 Stop Making Sense에 관해 Chris Frantz와 인터뷰한 기사 Talking Heads on ‘Stop Making Sense’: ‘We Didn’t Want Any Bulls–t’을 번역했다(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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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poster original”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stop_making_sense_1984.ht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리는 엉터리를 원하지 않았어요.” Talking Heads의 드러머였던 Chris Frantz가 밴드의 영향력 있는 1984년의 콘서트 필름 Stop Making Sense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클리쉐를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들이 기타 솔로를 할 때 사람들의 손가락의 클로즈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카메라를 원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뮤지션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추가적인 퍼커션, 키보드, 기타 등의 확대된 라인업으로 Speaking In Tongues의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 할리우드의 팬터지스(Pantages) 극장에서 가진 세 번의 쇼를 필름에 담은 것은 1983년 겨울이었다. 그 영화에서 – 후에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Jonathan Demme가 감독한 – 그룹이 원하는 한가지는 당시 MTV에서의 여하한의 것들에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것이었다. 이 필름은 뮤지션의 얼굴들을 길고 오랜 클로즈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청중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안무를 과장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조명을 썼다. Frantz, 보컬 David Byrne, 기타/키보드 Jerry Harrison, 그리고 베이스 Tina Weymouth로 구성된 그룹은 자금의 대부분을 그들 스스로 조달했고 Stop Making Sense가 출시될 즈음 이러한 집요함은 히트로 보상받았다. 팬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문자 그대로 복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 주, Stop Making Sense가 디지털로 나온 지 30주년이 되었고 또한 미국의 다양한 극장에서 재발매 되었다. 롤링스톤은 최근 여전히 그의 아내 Tina Weymouth와 Tom Tom Club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 활동을 하고 있는 드러머와 함께 하며 이 필름이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신이 Stop Making Sense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Talking Heads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칭찬들? 영화는 그 모든 발언들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웃음] 우리는 그 작업에 일했던 이들이 너무나 멋지게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척 행운이었다. 난 그 쇼를 보기 위해 1,000 불이라도 지불하겠다.[웃음]

어쨌든 그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는 모두 그 특별한 투어를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약 한달 간 연습했어요. 우리가 여정에 오를 바로 그 시점에, Jonathan Demme가 그의 당시 여자친구 Sandy McLeod와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린 이 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멋진데”라고 생각했죠. Jonathan Demme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죠. 그는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Melvin and Howard라는 영화를 마쳤어요. Jonathan은 우리보다 그리 더 많이 나이먹지도 않았고 당시에 매우 핫했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요.

Jonathan은 어떻게 장면을 구성했죠?

당시에 그는 Swing Shift라는 Goldie Hawn을 위한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영화의 첫 장면을 본 후 그녀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완전히 다시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밴드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가, 언제 카메라가 그들을 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노트를 만드는 것은 Sandy McLeod의 일이었죠. 그녀는 Jonathan이 Goldie랑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를 몇 달이나 따라다녔어요.

당시 당신들은 워너 브로스의 지원을 얻었나요?

아무도, 특히 우리 싱어 David Byrne이, 언급하지 않은 한가지는 영화 제작은 밴드가 지불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우리는 워너 브로스에게 빚을 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의 로열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은 그 돈을 게워낸 것입니다. 우린 당시 저축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우리의 노후대비 저축을 쏟아 부은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을 기꺼워했죠. 우리는 그 돈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넓은 개방공간 대신 시골의 작은 대학극장이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밴드의 결정이었어요. 그것이 실행되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던 것이 한 이유죠. 영화는 아트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청중이 계속 찾아올 거에요.

밴드가 개인적으로 나온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나온 것인가요?

그것은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다 결정된 거에요. 그것은 일종의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생이죠. 내 생각에 David이 하고 싶었던 것은 David으로 시작해서 그가 밴드에 Tina가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Chris를 초대하고 Jerry를 초대하고 Steve Scales를 초대하는 등의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라나 그렇지는 않았죠. 실제 벌어진 상황은 Tina, David, 그리고 내가 뉴욕으로 옮긴 후 밴드를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난 David에게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확신시켰어요. 난 Tina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죠. 내가 Jerry Harrison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요. 그러니 그것 일종의 재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로써 아주 잘 작동했어요.

드럼 루프에 맞춘 “Psycho Killer” 연주에서의 David 의 인트로에 대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David이 그 작업을 혼자 힘으로 했어요. 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이 일을 할거야”라 하는 것 같았죠. 그건 잘 됐어요.

당신이 무대에 오를 때 잠시 헤드폰을 듣던데요. Jonathan이 지시한 것인가요?

아뇨. 헤드폰으로 난 템포를 듣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흘 동안 찍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 노래가 같은 템포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는 처음에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딸깍 거리는 트랙을 고안해냈죠. 때때로 라이브를 할 때 당신은 조금 빨라질 수 있어요. 특히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에서는 말이죠. 청중은 햄머링을 좋아하고 생생한 공연을 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너무 생생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어요.

영화는 밴드 멤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합니다. 어떤 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이죠?

Tina는 영화 내내 진짜 천사 같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Bernie Worrell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이를 이상하게 흘겨보는 장면을 사랑합니다.[웃음] Bernie는 바라보기에 유쾌한 친구입니다. David은 내내 놀라웠어요.

David이 “Life During Wartime“을 부를 때 드럼 쪽으로 와서 놀랐습니까?

그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는 많이 움직였어요. 알다시피. 그는 진정 대단한 퍼포머입니다. 또는 적어도 그때는요.

그룹은 어떻게 안무를 연습했나요?

모두가 각자의 것을 연습했습니다. [백업 싱어들은] 대단했죠. Edna [Holt], Lynn [Mabry]는 정말 놀라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들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고 한껏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David은 그들을 마치 요가 옷 같은 것을 입혔어요. 그들은 익숙해졌고 난 근사했다고 생각해요.

의상에 관련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David이 말하길 “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색으로 입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흰색 양복을 입고 나타났죠.[웃음]

그게 놀라웠나요?

우리는 그가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양복이 실제로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생길 것이라는 것은 몰랐죠. 놀라웠어요. 정말 웃겼죠.[웃음]

양복에 관한 아이디어는 뭐였나요?

우리는 투어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David은 언제나 그게 주인공이 굉장히 큰 사각형 옷을 입는 일본의 노 극장 의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죠. 기모노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양복과 비슷한.

그래서 Jonathan Demme은 지시를 많이 했나요?

아뇨. 그는 담기만 했어요. 우리에게 지시한 유일한 이는 기술적으로 프로듀서였던 Gary Goetzman으로부터였어요. Gary는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고 빌어먹을 코 후비지마.”라고 말했죠. 그가 우리 받은 지시였어요.[웃음]

왜 청중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나요?

그 아이디어는 마치 관람자가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처럼 관람자에게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극장에서의 최고의 좌석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밴드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극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듣고 놀랐나요?

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와 멋지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Rocky Horror Picture Show이후로[웃음] 처음 보는 것이었죠. 많은 청중의 참여가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것인.

영화에서의 Tom Tom Club 부문은 순회공연의 정기적인 레퍼토리였나요?

네. 당시 “Genius of Love“가 큰 인기였어요. 그게 또 David이 그의 큰 양복으로 갈아입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리고 당신이 마이크를 쓸 기회도 줬고요.

네. 내가 영화에서 유일한 바람이라면 나에게 마이크를 좀 더 줬더라면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저 흥분했을 뿐이에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한 Talking Heads 웹사이트는 당신이 싸인한 Stop Making Sense 블루레이 카피를 사은품으로 주던데요. 지금 당신들은 다들 사이가 좋나요?

Tina와 나는 사이가 좋고요.[웃음] Jerry와도 사이가 좋고요. David과는 내 짐작에 “이메일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은 꽤 오랫동안 그를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어요. 그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고요. 그는 이메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쨌든 난 그 게임을 할 수 있어요.[웃음] 난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밴드 안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때때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죠. 그들은 우리에게 블루레이를 보냈고 우리는 싸인을 해서 되돌려보냈죠.

음악적으로 당신과 Tina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앨범을 위한 Tom Tom Club 기본 트랙이 여섯 개 정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독일 식으로 “Chris und Tina”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중이죠. 음악은 록앤롤이나 펑크(funk)와 반대인 완전한 일렉트로닉이고 독일풍입니다. Kraftwerk 의 영향을 받았죠. 그게 현재 우리가 생각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Theme”이라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연주곡이 온라인에 떠돌던데요. 그 곡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멋진 노래죠. Beach Boys의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에요. 아마 Talking Heads가 존재하던 당시의 첫 6개월 간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절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The Shirts 에 있던 한 친구의 작은 지하실에 스튜디오 녹음한 것은 있어요. 우리는 녹음을 많이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녹음을 연습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부르클린으로 가서 The Shirts 덕택에 그들의 작은 지하실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는 그 곡 말고도 몇 곡 더 녹음했어요. 나는 최근에 테잎들로 구워서 그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놀랍도록 좋아요.

그것들을 발매할 예정인가요?

아마도 언젠가는요. 현재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우리가 결코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는 그게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40년 후에 그것들을 듣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빌어먹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네. 굉장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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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To Nowhere의 초기 데모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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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 Road to Nowher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Little Creatures에 수록되었던 Road To Nowhere의 발매되지 않은 초기 데모 버전이다. 초기 버전이라 역시 노래에 빈틈이 적지 않다. David Byrne의 보컬은 심지어 약간 귀찮은 듯한 기색마저 보인다. 하지만 역시 레어 버전은 그 나름의 맛이 있는 법. Byrne이 내 집 마루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듯한 신선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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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의 도래에 따른 레이블과 뮤지션들의 명암

축음기와 라디오가 발명되고 보급된 이래 대중음악은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녹음기술이 발전하고, 비닐 레코드가 표준화되고, 뮤지컬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고, MTV가 개국하고, 십대들이 음악잡지를 사고, 대규모 락콘서트가 열리고, mp3 플레이어가 보급되고, p2p로 mp3를 교환하고, YouTube가 인기를 얻고, 애플이 플랫폼에서 음악파일을 팔고, Spotify가 라디오를 대신하는 등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산업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Q. Spotify가 레코드 레이블들과 요율을 협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마도 아직 이익이 나지 않는 사기업입니다.
A. 당신이 이윤을 낼 필요가 없을 경우 당신의 경쟁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네. 스트리밍 회사는 레이블들과 “협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대형) 레이블들은 투자자인데, 이건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죠. Spotify가 상장되면 이 레이블들은 많은 현금을 거머쥘 것입니다. 아마도 스트리밍을 통해 여태 얻는 극미한 수수료보다 훨씬 많겠죠. 그래서 레이블들은 스트리밍 회사를 거칠게 대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매우, 매우 영리한 거죠. 이는 단기적인 생각으로 여겨집니다.[David Byrne Talks Artists’ Rights, Spotify & Touring]

빌보드의 이 인터뷰는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저작과 미술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David Byrne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생각이다. 현재 주로 모빌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이에 연계된 각종 음악 서비스는 앨범 판매 등의 기존 수익모델이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일구어줄 사업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약 4천 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potify는 그 중에서도 Pandora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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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of Talking Heads”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젊은 시절의 David Byrne

David Byrne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Spotify의 경쟁력은 경쟁자를 무력하게 만들만큼 싼 이용료일 것이다. Spotify는 이러한 놀라운 원가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 것일까? 바로 메이저 레이블에게 스트리밍에 대한 수수료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레이블이 수수료를 낮추게 만든다는 것이 Byrne의 생각이다. 사실 레이블들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도 수수료를 더 받아야하는데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 될 지분 획득을 대가로 싼 수수료를 용인한다는 것이 Byrne의 또 다른 짐작이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광고만으로도(어떤 때는 몇 시간을 로긴하고 있음에도 전혀 광고를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티스트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중략] 내가 대화를 나눴던 주요 레코드 레이블들은 –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인디 레이블들 – Spotify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그들이 두둑한 몫을 지불받든지 그리고/또는 회사의 주식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도 나의 의심은 몇 주후 확인됐는데 메이저들이 Spotify 주식의 18%를 받았다고 보도됐을 때였다.[Behind the music : The real reason why the major labels love Spotify]

Byrne의 발언을 확인시켜주는 가디언의 2009년 기사다. 물론 레이블들은 싼 수수료와 넉넉한 지분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레이블들이 현재도 20% 가량의 Spotify 지분을 -“공짜로” – 얻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의 경이적인 성공에 크게 고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Byrne이 예상하는 상장보다는 대형 통신사 등에 장외에서 지분을 넘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1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뮤지션들이 끼어들 몫은 없다.

복수의 정보원에 따르면 메이저 레이블들은 현재 20% 가량 되는 Spotify에 대한 공동소유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략] 예전 모델에서 레이블은 그들의 가치있는 카탈로그를 사용하는 권리에 대한 대로 비싼 선불 개런티에 보다 집중했다. [중략] 그러나 이런 거래에 익숙한 몇몇 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이런 상황이 상당히 변했다고 한다. “[대형 레코드 레이블들은] 수수료보다는 주식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취득에 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죠.” 한 정보원의 말이다. [중략] 한 정보원은 Spotify가 한 목표가는 과거에 10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매우 달콤한 보상이라고 지적했다.[The Major Labels Are Trying To Sell Spotify for $10 Billion, Sourses Say]

진보적인 뮤지션인 Billy Bragg은 현재 뮤지션들이 대형 레이블들로부터 받고 있는 스트리밍 요율을 더 높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뮤지션이 받고 있는 수수료의 요율은 극히 일부의 레이블이나 대형 가수를 제외하고는 전체 수입의 8~1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레이블들이 주식 대박의 꿈 때문에 수수료를 낮게 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뮤지션들의 몫은 더 적다는 것이 Bragg 의 불만인 것이다. 이미 Radiohead의 Thom Yorke나 프로듀서 Nigel Godrich와 같은 이는 행동에 나섰다.

Bragg이 오늘 말했다. “이 스트리밍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계약으로 묶여있다는 것인데, 그때는 레코드 회사들이 실물의 생산과 배급의 모든 부담을 졌을 때죠. 그래서 아티스트들은 평균적으로 8~15%의 로얄티만 받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진 그 비율이 왜 아티스트들이 Spotify로부터 그렇게 형편없는 소득을 얻는지를 설명해줍니다.”[Spotify royalties : ‘Problem lies with labels – not streaming services’, says Billy Bragg]

요약하자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현재 Spotify와 같은 저항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서비스로부터 불공정한 요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 Byrne이나 Bragg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요율은 아날로그 시대에 적용된 요율이 그대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Byrne은 특히 이러한 상황이 대형 레이블들의 지분확보를 대가로 한 싼 수수료에 기인하며 이는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형 레이블들의 적응력은 너무 뛰어난 것 같다.

Talking Heads의 “거칠고 거친 인생”을 듣도록 하겠다.

Life During Wa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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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uring Wartime Talking Heads“. Via Wikipedia.

“Life During Wartime“은 1979년 발표된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Fear of Music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빌보드 핫100 차트 80위까지 올랐다. David Bowman이 쓴 Talking Heads에 관한 전기에 보면 David이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온다. 책에 따르면 David은 당시 애비뉴에이(Avenue A)1에 있는 아파트에서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바더마인호프2, Patty Hearst3, 톰킨스 스퀘어4을 생각했어요. 이것은 알파벳 시티5에 살아가는 것에 관한 노래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래의 화자는 좌익 조직의 조직원으로 추측되며, 그는 ”세 개의 패스포트와 두어 개의 비자를 가지고 있고 진짜 이름조자 모르는“ 이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그는 ”헤어스타일을 하도 많이 바꿔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다.6 정말 전쟁 중이 아님에도 전쟁 중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이다. 한편 가사 중에는 ”이것은 디스코가 아니다(This ain’t no disco)“라는 뉴웨이브 운동의 아이콘 비슷하게 간주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7 후에 David은 The Best of Talking Heads의 라이너 노트에 이 가사 때문에 자신들이 ”反디스코 운동의 기수“로 여겨진 것이 너무 웃겼다고 전했다. 이 곡은 또한 1983년 만들어진 그들의 공연 필름 Stop Making Sense에서도 공연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공연 비디오에서는 David Byrne의 에어로빅댄스나 조깅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 측에서 ”록앤롤을 만든 500곡의 노래“에 포함시키기도 했던 이 위대한 노래의 기타 코드는 Am과 E가 다다.

뮤직비디오

  1.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거리
  2. 서독의 적군파(赤軍派)
  3.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자로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이라는 좌익 조직에 납치되었다가 그들의 뜻에 동조해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던 여인
  4. 뉴욕 맨해튼 알파벳시티 구역에 있는 공공공원
  5.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내에 있는 근린
  6. 이러한 도망자의 흔들리는 정체성은 시드니 루멧이 감독한 1988년작 Running on Empty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7. 때문에 이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뉴웨이브 앨범 커버로 구성된 책도 나왔다.

국내에서 발매된 Stop Making Sense DVD

‘DVD월드’라는 회사에서 2004년 5월 판매한 Stop Making Sense의 DVD다. 여태 불법 DVD인줄 알았는데 영등위심의번호를 조회해보니 정말 심의를 통과하여 정식 발매된 DVD다. 궁금한 점은 과연 왜 이 회사는 국내에 별로 지명도도 없는 Talking Heads의 Stop Making Sense를 내면서 원래의 커버도 엉성한 커버로 바꾼 채 – Talking Heads도 Talking Head라고 썼다 – 내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Chris Frantz의 “가장 행복한 사나이” 선언

“37년 전 오늘 티나 웨이마우쓰와 난 아름다운 켄터키 워싱턴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행복한 기념일 티나! 난 아직도 내가 살아있는 중 가장 운 좋은 사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언제나 사랑해요. 이 모든 세월 동안 우리의 결혼을 지지해주고 있는 우리 가족 모두와 친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

이미지 및 글 출처

(Nothing But) 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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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butflowers” by here.. Licensed under Wikipedia.

Talking Heads는 1988년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Naked를 내놓는다. “(Nothing But) Flowers”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다. David Byrne 특유의 블랙유머스러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잘 결합된 이 곡의 백보컬에는 Kirsty MacColl, 기타에는 Johnny Marr가 참여하는 등 유명인들의 협업도 인상적이었다. 가사는 현대사회의 도시 풍경이 정치적 운동 또는 기근으로 말미암아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정서는 Joni Mitchell이 “Big Yellow Taxi”에서 “그들은 천국을 도로 포장해버렸다.”란 구절과 통한다 할 수 있다. 노래 가사 중 일부는1 Bret Easton의 소설 American Psycho에 인용되기도 했다. Kevin Smith가 감독한 2008년 작 Clerks II 에서는 오픈 크레딧에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Tibor Kalman이 시도한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사용된 뮤직비디오 또한 호평을 받았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79위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1. “And as things fell apart/Nobody paid much attention”

“100 GREATEST ARTISTS”

롤링스톤誌가 “100 GREATEST ARTISTS”에 Talking Heads를 100위에 선정하며 올린 리뷰의 삼번이다.(원문보기)

내가 어릴 적 난 하드코어 펑크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하드코어는 매우 엄격했다. Talking Heads는 내 기억으로 나의 펑크 친구에게 “요, 첵디스아웃! 이 네 코드짜리 작품으로 우린 뭘하는 거지? 우리는 뭔가 놓치고 있어!”라고 말했던 첫 밴드였다. 내가 진짜 좋아했던 첫 곡은 “Once in a Lifetime” 이다. MTV가 처음 그들의 발톱을 사람들에게 박았었고 그 노래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취한 성인들에게는 하나의 주제가와도 같았다.  Remain in Light 은 앰비언트 뮤직, 강렬한 가사,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창조적인 퍼커션과 베이스 파트의 결합이었다. 난 어린애였지만 그래도 “난 이 레코드에 빠져야해!”라고 생각했었다. 놀라웠다. 그들에게는 무척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Talking Heads의 베이스라인을 들어보면 그 노래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드럼을 들으면 곡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David Byrne의 가사를 들으면 마치 “이 노래는 내가 이럴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노래잖아!” 라 생각할 것이다. 마치 여러 곡들이 한 곡으로 섞여들어간 것 같다. Talking Heads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난 그들이 그들의 프로듀서 Brian Eno를 또 하나의 악기로 여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자란 동네는 메릴랜드에 있는 콜럼비아다. 이곳은 인공호수와 함께 만들어진 계획 커뮤니티였다. David Byrne의 부모는 이곳에 얼마간 살았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단단하고 실재하고 이곳에서 영원할 것이라는 겉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창조했다는 것을 앎에도 말이다. Byrne의 가사는 미국의 풍경의 책략에 관해 말하고 있다. 미국인의 꿈은 은밀한 면이 많고 그는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난 이 사나이가 내가 직접 목격했던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느꼈다. 그건 언제나 복잡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본질이 존재하는 곳에 있다. “This Must Be the Place”는 아마도 그들의 전체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일 것이다. 난 이 곡의 가사가 정말 차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래는 단순하지만 그 모든 요소들을 바라보면 어떻게 그것들이 함께 모여지고 그 내림박자가 어디에 존재하는 지를… 그건 마치 .. 똑똑함은 진정 적절한 단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천재.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