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 Heads 트리뷰트 공연에 관한 소식

일군의 뮤지션들이 달라스의 Kessler 극장 등의 몇몇 공연장에서 Talking Heads의 Remain in Light의 수록곡과 다른 앨범에서의 몇 곡을 추가한 트리뷰트 공연을 가졌다고 한다. 이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연장 공연을 기획할 계획이라고. 또한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도 이 공연에 합류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보다 자세한 소식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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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Berry의 펑크밴드들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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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Berry 1971” by Universal Attractions (management)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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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ac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Chuck Berry가 1980년 펑크 잡지 Jet Lag과 인터뷰를 가졌다. 베리는 “요즘 아이들이 듣는 것”에 관한 그의 생각을 말했다.

The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그 녀석들은 대체 무엇에 화가 나있는 것인가? 기타 연주나 진행은 내 것과 같다. 백비트도 좋다. 보컬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니가 화가 나 있으면, 최소한 사람들이 네가 뭐에 화가 나있는지 알게 해야 할 것이다.

The Clash’s “Complete Control”:

처음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리듬과 코드 진행은 잘 어울린다. 이 친구 노래 부를 때 인후염에 걸린 거냐?

The Ramones’ “Sheena is a Punk Rocker”:

괜찮은 곡이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나 역시도 코드 세 개밖에 몰랐다.

The Romantics’ “What I Like About You”:

마침내 춤출 수 있는 것이네. 추가로 주어진 내 리프 몇 개가 섞인 육십 년대 음악처럼 들린다. 이게 신곡이라 그랬었나? 난 이 곡을 많이 들었다. 이런 야단법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Talking Heads’ “Psycho Killer”:

펑키(funky)한 곡이다. 확실히. 베이스가 아주 맘에 든다. 좋은 조합에 흐름도 아주 좋다. 싱어는 아주 안 좋은 무대공포증의 경험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Wire’s “I Am the Fly”, Joy Division’s Unknown Pleasures:

그래 이것들이 소위 새로운 것들이다. 전에 들은 적이 없는 곡이다. 이 곡은 BB와 Muddy가 시카고의 오래된 원형경기장의 백스테이지에서 연주했을 것 같은 오래된 블루스 잼처럼 들린다. 악기는 틀릴지 모르지만 실험정신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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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 Weymouth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내놓은 This Many Boyfriends(공식 페이지, 페이스북)가 세 번째 싱글을 내놓을 예정인데, 노래 제목은 흥미롭게도 Tina Weymouth다. 바로 Talking Heads의 베이시스트였고, 현재 Tom Tom Club의 멤버인 그 누님. 싱글 발매일은 내년 1월 21일. 노래는 전반적으로 발랄한 퓨처팝 스타일로 얼핏 My Favorite를 연상시킨다.

Chris와 Tina가 뽑은 위대한 펑크밴드들 보기

그들의 최근 EP Downtown Rockers의 바삭바삭하고 전염성있는 타이틀트랙을 통해, Tom Tom Club의 Chris와 Tina는 1970년대 맨해튼에서의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Richard Hell, Patti Smith, Television, Blondie 등. “우리가 Talking Heads로 처음 나설 때 CBGB에는 위대한 뮤지션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Chiris의 말이다. “모든 이들을 그 노래에 집어넣을 수 없었죠. 3분짜리의 공간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Talking Heads의 경우도 그랬지만 펑크, 아트락, 개러지락, 뉴웨이브와 같은 개념들은 Chris와 Tina가 함께 어울렸던 많은 이들에게 자유롭게, 그리고 상호교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뉴욕의 언론은 런던의 언론이 그랬던 것과 같은 행동을 했죠.” Tina의 말이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이름에 구겨 넣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았죠. 너무나 많은 밴드들이 있었고 청중들은 그 다양함을 좋아했어요.”

“펑크”란 말을 보면 Chris는 그 시절에 그 포괄적인 용어에 들어맞는 이가 누구인지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 이름은 밴드들 간에 쓰지 않았어요.” 그의 말이다. “그 단어가 내던져진 것은 펑크 잡지가 세상에 나오고서부터죠. 그리고 조금씩 그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이 밴드는 펑크다. 이 밴드는 아니다.”

시간이 흘러 Chris와 Tina는 어떤 밴드들이 진정 펑크라고 불릴만 한지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 이 남편과 아내 사이이인 리듬섹션은 그 장르에서의 진정 위대한 열하나의 뮤지션에 대해 이야기한다.(알파벳 순서로)

“이들 밴드는 모두 독특한 특성이 있어요.” Chris의 말이다. “그러나 모두 공통점이 있죠. 기억해둘만 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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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번 interviewed 닐 핀

데이빗이 진행하던 PBS의 프로그램 Sessions At West 54th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이다. Sessions..시리즈는 DVD로 출시되었지만 인터뷰는 DVD에 수록되지 않았다.

Interviewee: Neil Finn
Interviewer: David Byrne
Date: Dec 5th 1998

출처는 SomethingSoFinn.com이다

데이빗 번: 당신이 스플릿 엔즈를 시작할 무렵의 뉴질랜드 음악 씬은 어땠습니까? 나는 당신들 공연을 본 적 있거든요, 이곳 뉴욕의 보텀 라인에서 말입니다.
닐 핀: 그건 내가 밴드에 들어가기 전의 일입니다. 나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데이빗 번: 맙소사 – 그 공연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닐 핀: 그래요. 뉴질랜드에서건, 세계 어디서건 우린 이상한 존재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는 나팔 바지 차림의 밴드가 커버 곡을 연주하며 현상유지를 하는 게 전부였던 시기입니다. 스플릿 엔즈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길을 갔던 거죠. 우리의 의상을 만들어 준 노엘 크롬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는 망토를 두른 채 손에는 번개 조각을 들고, 진한 화장을 하고, 펄럭대는 줄무늬 바지를 입고서 오클랜드의 중심부인 퀸 스트릿을 어슬렁거리곤 했어요. 그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플릿 엔즈의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를 뮤지션이라고 보긴 힘들었지만, 어느 날이었던가 공연 중에 숟가락으로 연주를 하더라구요. 그건 썩 괜찮은 연주이긴 했어요. 당시로선 그만한 실력이면 밴드에도 들어올 만 했죠. 결국 그는 자신의 밴드의상도 준비해왔어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밴드가 둘 있습니다. 하이 로빙 텅즈라는 밴드였는데, 꽤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비트윈즈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 우리가 좋아하던 밴드는 그 둘 이었습니다.
데이빗번:여기서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출신이라는 점이, — 그리고 나 또한 뉴욕이 아니라 상당히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는 말을 해야겠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미국 출신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유리한 조건이란 생각이 들었는데요…
닐핀:아, 그렇죠.
데이빗번: …중심부가 아닌 곳에 있는 것 말입니다. 덕분에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에 대해 심사 숙고할 시간을 벌 수 있지 않나요? 그러다 보면 실수도 좀 할 순 있지만…
닐핀:그렇습니다. 또한 그런 변방에서는 세상이 퍽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문화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건 정제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우린 모타운과 R&B, 팝의 차이를 알지 못했어요. 실제로, 우리에겐 단 한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우린 다른 세계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덕분에 커다란 꿈을 가질 수 있었죠, 그건, 어쩔 수 없이 다소 왜곡된 꿈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웃음]
데이빗번:새 앨범에 “Sinner”를 비롯해 죄를 다룬 곡이 몇 있습니다.
닐핀:예.
데이빗번:내가 읽은 인터뷰 중에, 당신이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것에 대해 얘기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아이리시 가톨릭인가요?
닐핀:그렇습니다.
데이빗번:뉴질랜드엔 많은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이민자가 있지요.
닐핀:맞아요. 아일랜드인은 전 세계에 펴져 있습니다. 난 어머니가 아이리시 가톨릭이었고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어요. 우리 가족은 며칠에 한번씩 가톨릭 사제들과 술을 마시거나 다과회를 갖곤 했습니다. 많은 경우 술을 마셨죠. 굉장히 기억에 남는 파티가 있었는데요,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끝난 파티였습니다. 그날 밤엔 신부님들과 우리 이모들이 노닥거리기까지 했죠. 실은, “Sinner”의 가사에 “내가 가장 만족하는 건 모든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나는 그 구절을, 엄격한 가톨릭 신자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흥겨운 파티를 벌이는 와중에, 돌연 모든 방해물이 사라져 아이들이 멋대로 날뛰고, 밤을 새우고, 술을 훔쳐내고… 뭐,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결부시키려고 했습니다.
데이빗번:그들이 그렇게 파티를 자주하면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닐핀:글쎄요, 난 그런 류의 교리를 깨뜨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인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능해요. 개중에는 끝이 안 좋았던 사람도 있긴 하지만요 – 아일랜드 출신 중에는 정말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었죠. [웃음]
데이빗번:하지만,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 — 최소한 가톨릭에서는, 속죄할 수 있다, 용서받을 것이다, 하는 의식 말입니다.
닐핀:오, 그렇죠.
데이빗번: 끔찍한 짓을 하고 괴로워하다가도, 이것만은 언제나 인지하고 있잖습니까 “뭐, 용서해주시겠지.”
닐핀:그래요. 그런 점에선 굉장히 위안이 되는 종교이기도 하죠. 언제 한번 고해성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음…
데이빗번:신부님을 모셔다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닐핀:진짜요? (목을 가리키며) 거기에 뭐 하나 갖다 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당신이 직접 해줄 수도 있을 거예요, 데이브. [웃음] 확실히, 고해성사는 굉장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성모송”과 “주기도문”을 세 번씩만 기도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니요. 게다가 그건 여전히 가사를 쓰는데 귀중한 자양분이 됩니다. 가끔 그것에 너무 많이 기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 떠올리곤 합니다.

폴 스미쓰의 토킹헤즈 티셔츠 컬렉션

영국 디자이너 Paul Smith가 Talking Heads의 앨범 커버들을 기초로 하는 네 장의 티셔츠 캡슐 컬렉션을 런칭했다. 스미쓰는 밴드의 물건 들 중에서 David Byrne의 물건들, 백스테이지 입장권, 사진, 스토리보드, Byrne의 오리지널 작업들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밴드의 팬으로써 스미쓰는 이 소중한 수집품에서 네 장의 티셔츠를 창조해냈다. 한 장은 공연 입장권 시리즈, 또 하나는 Byrne의 빅수트 스케치, 그리고 두 장은 앨범 “Remain in Light”과 싱글앨범 “Road to Nowhere”의 커버들을 그린 것이다. 이 컬렉션은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65파운드에 팔리고 있다. 다만 11월 4일 뉴욕에 있는 5번가 부티크에서 Byrne을 초청객으로 모셔서 공식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from]